
나는 언젠가 라디오 프로그램의 전화 상담 코너에 상담자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젊은 남자가 상담을 청했는데,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신이 안 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상다을 한 그날이 바로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은 첫눈에 빠지는 거라고 말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나는 사랑은 서로를 서서히 알아가는 과정에서 싹트기 마련이니까 조금 기다려 보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 말에 "어떻게 기다리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
사람들은 이제 기다리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속도에 중독되어 당장 눈앞에 결과물이 보여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금방 안 오면 '답문을 보낼 상황이 아닌가 보다'하고 기다리기보다 '답을 왜 안 하느냐'고 화를 내며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관계를 맺는 데 조급해 하는 것은 상대방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믿으면 언제든 화답이 올 거라 생각하고 마음 편히 그 결과를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상대를 믿지 못하면 기다리는 도중에 온갖 가능성을 생각하며 초조해 한다. 결국 불신이 조급증을 부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 10분 후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또 내일 당장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미래를 위해 결과를 기다릴 바보는 없다. 당장 그의 마음을 확인해야 하고, 지금 내 눈앞에 결과가 나타나야만 한다.
이처럼 속도에 중독된 현대인들에 대해 페터 보르샤이트는 '템포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설명한다. 무엇을 향해 달리는지도 모른 채 그저 속도란 악마를 쫓아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바쁜 일이 없어도 서두른다. 서두르지 않으면 낙오자가 도리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은 사람들을 충동적으로 만든다. '인생 뭐 있느냐, 원하는 게 있다면 가능한 빨리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고, 조금이라도 만족을 지연시키는 것이 있다면 무시하고 경멸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불신과 불안 속에 점점 자제력을 상실하고 인내심을 잃어 간다.
그러다 보니 요즘 젊은이들은 일에서도 바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힘들고 끈기가 필요한 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외면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라고 즉각적인 성과를 쫓으며 서두리기만 하면 결코 잘 할수 엉ㅄ다. 오히려 시간에 쫓겨 허덕이기만 할 뿐 일 처리에는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어느 한 가지 일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한다.
일을 서두르면 더 그르치기 쉬운 이유는 우리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면 일의 속도가 빨라지고, 그만큼 앞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처리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뇌에는 '자극 장벽'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자극만을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걸러 내 버린다. 그러므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이상의 작업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지만 뇌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하려고 하면 오히려 처리능력이 떨어져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이런 결과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MIT 심리학자 유흥 지앙은 대학생들에게 십자가와 십자가가 아닌 도형을 동시에 확인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과제를 들은 대학생들은 처음에 이를 우습게 생각했지만 실험이 시작되자 의외로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많은 학생들이 실수를 저질러쏙, 속도는 느렸다. 실험 결과, 십자가와 그 외의 도형을 동시에 확인하는 것은 따로 확인할 때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또 슈테판 클라인은 '시간의 놀라운 발견'에서 한 번에 많은 일을 처리하려는 조급함은 공허함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고 지적했다. 종종 사람들이 하루 일정을 빡빡하게 채워 빈 시간이 없도록 스케쥴은 짠다. 그런데 막상 저녁이 되어 하루를 되돌아보면 별로 한 일도 없이 그저 바쁘기만 했다고 느낀다. 그럴 때 사람들ㅇ느 허탈해 하며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조급증이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허함만을 낳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 번에 앞서 가려는 시도가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조급해 하지 말고 장기적인 미ㄹ래를 바라보며 노력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끈기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쌀이라도 뜸이 들어야 맛있는 밥이 되듯이, 유비가 제갈공명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듯이, 어떤 일의 성과나 사람의 마음은 하루아침에 얻어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습량과 학습 시간, 반응 시간, 정밀도 등을 측정해서 학습 곡선을 그려 보면 곡선은 상승했다가 약간 하강한 뒤 더 높이 상승하고, 또다시 약간 하강했다가 다사ㅣ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이든 배우고 익힐 때 중간 중간 정체나 퇴보를 하는 시기가 있으며, 그것을 거쳐야만 다시 상승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끈기가 없는 사람들은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배움을 중단해 버린다.
그러나 오랜 시간 노력하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란 말이 있는데, 이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변화하는 극적인 순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99도씨의 물이 100도씨가 될 때 불과 1도씨의 차이지만 물은 질적으로 달라진다. 이를 티핑 포인트라 부르는 것이다. ㅇ뤼의 삶에도 티핑 포인트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순간을 위해서는 물이 끓기를 기다려야 하듯이 인내하며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위대한 발견을 한 위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도 끈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그들은 발견을 하게 된 과정에 대해 보통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에 주목하여 '역시 그는 천재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는' 힘든 순간으 버텨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끈기를 가지고 노력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주변에서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듯한 상황에서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포기하는 못브을 보면서도 말리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바로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도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세상이 그것에 화답할 것이라고 믿어라. 그래야 끈기를 가지고 일에 몰두할 수 있고, 그래야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안하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질 때는 당신이 품었던 목표를 떠올려 보라. 혹시 조급한 마음에 밟아야 할 과정들을 어떻게든 단축하려 드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기억하라. 길고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어 훌쩍 뛰어 넘는 데만 관심을 쏟다가는 목표에 도달하기는 커녕 중간에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끈기 있게 정도를 걸을 때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
참으로 다행인 것은 끈기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기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역시 나는 안 돼'라며 섣불리 포기하지 말고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조금씩 일을 시작하도록 하라. 명상이나 마라톤 등 한 가지 활동을 정해 조금씩 그 시간을 늘려 가는 연습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꾸준히 시간을 늘려 점점 목표에 가까워지게 되면, 당신은 노력이 가져다 주는 성취의 기쁨과 자신에 대한 대견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면 다른 일을 할 때도 끈기 있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끈기, 이것은 일에서나 인간관계에서나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세상에 어떤 것도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그러니 조급해 하지 말고 당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티핑 포인트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나에게 가장 필요하고 마음에 와닿은 목차. 48. 끈기를 길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