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6년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 책 먹는 여자, 기억 파는 남자
타인에 대한 탐험과 소유에 관한 철학적 사유가 담긴 『백수생활백서』에 더 이상 ‘책 읽어주는 여자’는 없다. 다만 “하루에 한 권 이상의 책을 비타민처럼 복용하는” 화자, ‘책 먹는 여자’ 서연이 있을 뿐이다. ‘책 읽어주는 여자’에서 진일보한 ‘책 읽는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서연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다. “나는 희망이 없다. 아니, 있긴 있으나 단순하다. 그러므로 두려울 것이 없다. 나는 잃을 것이 거의 없다. 나는 가볍고 의미 없고 비생산적이다. 나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든다.”라고 말함으로써 서연은 패배자가 아닌 몽상가, 작가가 아닌 독자로서의 완벽한 삶을 살게 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나 지식인이나 다른 그 무엇이 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목적이다. 책 읽기는 그녀의 삶의 근거요, 형식인 셈이다. 인생과 달리 시작과 끝이 예정돼 있는 하나의 전체로서, 이미 완결된 수많은 소설들을 끊임없이 인용하며 그 인용 뒤에 겸손하게 숨어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독자는 아버지의 집 한구석에서 소리 없이 기생하며 최소한의 경제적 수단으로 조금도 불편해하지 않는 서연의 삶과 표리를 이룬다.
서연은 옛사랑의 그림자를 떠나보내기 위해 여자의 책을 처분함으로써 자신의 기억을 팔아버리는 한 남자를 만난다. 약간은 식물적이고 수동적인 서연과, 활기를 불어넣는 주변 인물들 간의 필연적인 만남과 대화, 사건 들은 웃음과 동시에 진한 페이소스를 자아내며 독자와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책과 사람, 그리고 영화와 인생을 이야기한 이 작품에 대해 소설가 조경란은 ‘소설가라면 누구나 이십 대에 한번쯤 쓰고 싶어 했을 청춘소설’이라 말한다. “나는 책을 소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아주 잘 읽힌다는 장점을 지닌 『백수생활백서』는 소설의 포괄성과 유연성을 하나의 그릇에 잘 버무려놓은 수작임에 틀림없다.
■ 『백수생활백서』의 줄거리
책 읽을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서 일하기 싫다고 한다면? 별 핑계도 다 있다고 하겠지만 자발적 백수인 우리의 주인공 ‘나(서연)’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만의 진실이다.
문제는 책 읽기 위한 시간을 더 많이 내기 위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책을 살 돈이 없다는 것! 균형, 바로 그것이 문제다.
절판된 책들을 소유하고 싶은 나는 인터넷을 통해 책을 팔기로 한 남자와 접선한다.
어리고 돈은 없고 시간만 많았던 시절, 그래서 가지고 싶었으나 다만 빌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책들을, 그냥 넋 놓고 바라보아야만 했던 책들을, 그는 가지고 있다. 남자는 실연한 옛사랑의 기억을 팔아버리듯, 나에게 옛사랑이 남긴 자신의 책들을 판다. 나는 남자의 책들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남자의 ‘실연복수극’에 동참하기로 한다. 남들에게 오해 사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나이지만, 그보다 앞서는 건 언제나 책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지나간 책은 더욱 흥미롭다. 나는 그의 책들을 통해 그의 사연을, 사랑을, 그리고 복수를 계획하고 돕는다. 어쩌면 그의 책들은 나로 인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뒷자리 어딘가에 먼지처럼 고요히 앉아 책을 읽고 싶었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영화광인 유희를 만났다. 훌륭한 성적이나 뛰어난 외모와는 달리 학교에서 주로 하는 일이 잠자기 아니면 분란 일으키기였던 문제아 유희. 유희는 대학 졸업 이후 툭하면 회사를 때려치우는 진짜 골칫덩이가 됐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유희는 좀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아주 잘 살고 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탈이 났어도 여러 번 났을 인생이지만 기껏해야 회사 몇 번 때려치우거나(아니면 잘리거나), 연애 몇 번 잘못된 것뿐이다. 회사야 다시 들어가면 되고 연애도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또다시 회사를 그만둔 유희의 이번 해결책은 좀 독특하다. 난데없이 소설을 쓰겠단다. 끈기라곤 전혀 없는 유희가 과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어차피 미래 따윈 현재 보다 중요한 적 없었다. 쓰고 있는 지금 행복하다면? 읽고 있는 지금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완벽한 것 아닐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했지만 아직도 로맨스를 꿈꾸는, 못 말리는 아줌마 채린은 나의 중학교 동창이다. 도서 대여점을 겸한 채린의 비디오 가게는 주인의 취향을 절대적으로 반영하듯 로맨스물 비디오와 연애소설, 순정만화로 가득하다. 취미가 로맨스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남자와 아주 제대로 사랑에 빠진 모양이다. 돌연 행방이 묘연해진 채린. 상처 없는 사랑보다 상처 많은 사랑이 우리의 기억 속에선 좀 더 끈질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채린도 남자를 단순히 흘려보낼 수 없고, 그도 그 여자를 향해 복수를 꿈꾸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남자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면서 그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남자는 내게 홍콩에 가자고 말한다. 홍콩의 하늘 아래에서 나는 아주 많은 것들을 떠올리고 또한 깨닫는다.
자기 자신을 위해 채린이 사랑을 하고 유희가 소설을 쓰듯, 나는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책을 읽는다. 나는 꼭 이루어야 할, 남들과 똑같은 인생의 목표는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책을 읽을 것이다. 누군가 예수를 믿고 부처를 믿듯 나는 책을 믿는다. [인터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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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좋아하는 주인공.
책 읽기를 그만둔 남자.
책을 쓰기로 결심한 주인공 친구1.
책을 빌려주는 주인공 친구2.
소설의 소재가 책인 것에 흥미가 가기 시작.
주인공의 책에 대한 감정에 동화.
중간중간 주인공이 읽었던 책에 대한 리뷰에 교감.
나도 한 때 이런 삶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 웃음.
왜 꼭 열심히 살아야되는거지?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난 너무 열심히 살고 있는건가? 전혀 ㅋ
올 한해 남은 석 달은 열심히 좀 살아야겠다;;